Page 137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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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경제론을 비판하고 역사학파의 관점을 따르는 것으로 방향 전환하였다.
             그는 아직 공업화가 안 된 중국은 보호무역 정책으로 중국의 산업을 보호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자유 경쟁이 과도하면 국가가 병들게 되며,

             자유주의의 불간섭주의는 선진국과 후진국,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의 모순

             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고전학파에서 역사학파로 시각이 바
             뀐 양계초는 유럽의 경우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들어 ‘민족 제국주의’
             시대에 진입하였다고 보았다. 이러한 민족 제국주의 시대에 역사학파의 국

             민경제학설과 국가유기체설이 국민국가의 중요한 근간이 된다고 보고 이

             를 제창하였다. 넷째, 1차세계대전 후에 양계초는 유럽의 국가주의를 병적
             인 상태라고 비판하였다. 국민 국가를 지탱하는 경쟁주의, 자본주의의 대
             체물로서 중국 고유의 기초인 민본주의, 상호부조 정신, 소농제도의 가치

             를 높이 평가하였다.

               양계초는 이런 오랜 모색 과정을 거쳐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부정에 이
             르게 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전통적 가치관으로의 복귀이고, 근본적으로 불
             교의 ‘무소유’, ‘평등’, 만물의 상호의존 사상과 연관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 철학 소개


               양계초는 칸트를 소개하는 글의 제목을 ‘근대 제일의 철학자 칸트’라고

             하고, 인류 역사에서 칸트를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와 함께 4대 성인으로

             까지 꼽는 데 찬성할 정도로 높이 평가하였다. “직관주의, 쾌락주의가 온
             세상에 유행하고 방자하고 음탕한 악덕이 범람 횡행하던 시기에, 엄격한
             칸트가 나와 양지良知로 본성을 말하고 의무로 윤리를 말한 뒤에 광란을

             가라앉혀 만인들이 나아갈 바를 알게 하였다.”라고 하면서 칸트는 실로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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