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5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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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조선대표단은
             한국의 정세와 식민지 치하의 문제들을 담
             은 책자를 배포했고 독립 확보를 위한 결

             의안을 제출했다. 또 12월에 브뤼셀에서

             열린 반제국주의연맹 총회에도 최린과 함
             께 참석하여 한국의 상황을 널리 알렸다.
               조국에서 교육과 학술 활동을 펼치려고

             돌아온 1920년대 후반에는 유학생들에 의                사진 2. 김법린.

             해 근대화에 앞서간 일본 불교계의 상황
             뿐 아니라 서구 근대불교학의 최신성과가 소개되고 있었다. 프랑스의 김법린
             뿐 아니라 독일의 백성욱, 일본에 다녀온 강유문, 김경주, 김태흡, 허영호 등

             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김법린은 「구미학계와 불전 연구」(1928), 「불란서의

             불교학」(1932) 등의 글을 《불교》 잡지에 발표하여 최신 학문 동향을 알렸다. 그
             는 조선의 불교학계가 세계의 학술 사조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함을 주장
             했다. 프랑스 불교학의 경우 인도학, 중국학, 티벳학으로 나누어 그 성과를

             정리했고, 언어학과 역사학 등의 비판·분석적 방법, 원전 교정과 주석 위주

             문헌학 연구를 통해 종학의 교의 전통과 신화적 전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학술뿐 아니라 불교계의 개혁과 정치적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귀

             국한 직후인 1928년 조선불교 청년회에 들어갔고 다음 해에는 조선불교 선교

             양종 승려대회에 참가하여 종헌 제정에 앞장섰다. 그러다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1930년 일본으로 가서 도쿄에 있는 조동종 종립대학인 고마자와 대학
             에서 불교를 공부했고 조선불교 청년총동맹 조직을 주도했으며 만당의 도쿄

             지부를 만들었다. 만당은 1930년 범어사 출신 승려들이 주동해 조직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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