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0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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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왔다.  그리고  일본에  전파했
                                             다. 오늘날 일본불교는 이 경전
                                             을  통해  토착화가  이루어졌다.

                                             구법하는 과정에서 평범한 백성

                                             들이 이들 일본 승려들에게 숙
          사진 1. 『모치즈키불교대사전』.
                                             식을 제공하고, 말단의 관리들
          은 보호해주었으며, 불교인들은 이들의 친구가 되어 맘껏 불법을 배워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개방했다. 그러니 불법의 홍은을 입은 후손들이 응

          당 무한한 감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불법의 역사는 이러한 것
          이다. 적어도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불법의 가르침인 무상보시의 정신이 모
          두를 하나로 묶는 연대의 힘이 아니었으랴.

           모치즈키 신코(望月信亨, 1869-1948, 사진 2)의 사전은 이처럼 시공을 초월

          해 하나가 되었던 불교인들의 땀과 눈물의 결정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동해가 보이는 후쿠이현 중부 타케후시 출신이다. 같은 현의 정토종
          사찰 원해사圓海寺에 출가했다. 4년간 법요 작법을 익히고, 교토의 총본산

          지은원知恩院 내 정토종 서부 대학림에 들어가 당시 뛰어난 불교학자들의

          지도를 받았다. 이어 1888년 20세에 도쿄의 정토종학 본교에 들어갔다. 그
          곳에 함께 입학한 와타나베 카이쿄쿠渡辺海旭, 오기와라 운라이萩原雲来와
          더불어 사람들은 그들을 삼우오三羽烏로 불렀다. 이들은 당시 최고의 수재

          들이었다. 와타나베와 오기와라는 정토종 제1회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독

          일에 유학, 인도학자 에른스트 로이만Ernst Leumann의 지도를 받았다. 와
          타나베는 후에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郎와 함께 『대정신수대장경』의 도
          감을 맡았다. 오기와라는 범어에 기반한 근대 불교학의 기초를 놓았다.

           모치즈키는 국내 유학생으로 천태종의 본산 연력사延暦寺가 있는 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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