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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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과 ‘이해적 깨달음[解悟]’인 교가
                                              의 깨달음은 사실 하늘과 땅 만큼
                                              이나 큰 차이가 있다.




             【강설】 교가에서 말하는 돈오와 견성은 해오의 견성으로서 소견이 치성해
             모든 것을 다 아는 듯해도 실제로 실상에 대해 물으면 아무 것도 모른다.
             예로부터 선문의 시험이란 보통 어려운 문제로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임제종 중흥조라 일컬어지는 오조 법연 선사 밑에

             3불이 났으니 불안佛眼, 불감佛鑑, 불과佛果 선사 등이다. 불감 혜근佛鑑慧
             勤 선사 밑에 오래도록 수학하던 한 스님이 있었다. 그 스님은 대중에 섞여
             살며 법을 묻곤 하였는데 세월이 지나도 전혀 깨달은 바가 없자 스스로 탄

             식하고는 “내가 이생에서 철저하게 깨닫지 못한다면 결코 이불을 펴지 않

             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렇게 부모님 상이라도 당한 듯 결연한 자세로 49일
             을 서서 눕지 않은 채 정진하고 있었다. 하루는 불감 선사가 상당하여 법
             문하시는데 “삼라만상이 모두 한 법에서 도장 찍히듯 나온 것이다.”는 말

             끝에 단박 크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불감 선사를 찾아가 말씀드리니 “아

             깝다! 한 알의 밝은 구슬을 이 지랄병 든 놈이 주웠구나.”라며 인정하였다.
             불과 극근佛果克勤 선사, 즉 원오 스님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아직 깨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였다. “내가 꼭 시험해 봐야겠다.” 하고는 사

             람을 시켜 불러오게 하였다. 한 번은 같이 산을 오르다 폭포 아래 깊은

             소沼를 지나는데 원오 스님이 갑자기 그를 깊은 소 아래로 확 밀어버렸다.
             그리곤 허우적대며 숨이 턱에까지 찬 그 스님에게 대뜸 물었다.



                  “우두 스님이 4조 도신 스님을 만나지 않았을 때는 어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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