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7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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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가면 그대로 그림 속으로 걸어가는 기분입니다.
               솔바람 길, 소나무 냄새가 피부로 스며듭니다. 앞에 가는 친구는 바짓가
             랑이를 등산 양말 속으로 집어넣고 다부지게 걷는군요.  걷는다는 것은 신

             체가 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일이지만,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산길을 걸

             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운치가 있는 일입니다. 산속에 있다는 것은 이
             미 속세로부터 멀리 있는 것인데 그 위로 또 비가 내려 속세를 이중으로
             벗어나게 해줍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려서 깨끗한 산속 풍경을 빗물로 한 번 더 깨

             끗하게 씻어줍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젖은 나뭇잎이 빗소리를 반사해 산속 깊은 곳까지 자
             잘한 반향음反響音으로 가득합니다.



                  “나는 걸을 때만 명상할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내
                                                     1)
                  머리는 다리와 함께 움직일 때만 움직인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루소입니다. 산길을 걷노라면 경치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우리 안에서도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빗줄기는 모든 것의 표면 위
             를 끝없이 내리칩니다. 빗속에서도 우리는 호흡을 놓치지 않으며 천천히 한
             발 한발 자신의 존재를 만끽하며 걸어갑니다. 이렇게 빗속에서 산행을 하

             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정토에 있는 것처럼 즐겁게 합니다.

               빗속을 계속 걷고 있노라면 우리처럼 빗속으로 걸어갔던 수많은 사람들
             이 생각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빗속에 걸어갔을까요. 수많은 사람




             1) 장자크 루소, 『고백록』, 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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