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P. 121
솔바람길을 따라 사리
암 주차장까지 올라 왔
습니다. 사리암에는 올라
가지 않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아쉽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돌아섭
니다. 바짓가랑이를 타고
빗물이 흘러들어 걸으면
신발 속에서 찰박찰박
물소리가 납니다.
나이가 들고 몸의 기
능이 떨어지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도 그만큼
사진 2. 비 오는 날의 운문사와 호거산.
좁아집니다. 흰머리, 주
름살, 뻑뻑한 관절, 아쉬워하고 슬퍼하면서도 생각하는 노쇠한 몸.
문득 연약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 의지할 데 없는 사람만이 천국을 본
3)
다는 말을 생각해냅니다. 오늘 하루,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우리는
평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가난하게 하고 단순하게 만들어주던
길, 삶의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우중산행입니다.
3) 소노 아야코, 『나다운 일상을 산다』(2019), “『바이블』에 나오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히브리어인 ‘아나윔’
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그것은 학대받는 사람, 고통 받는 사람, 가련한 사람, 가난한 사
람, 온화한 사람, 겸손한 사람, 약한 사람 등의 뜻이다. 다시 말해서 아나윔은 국가, 부, 건강, 신분 등
모든 긍지를 빼앗기고 그 은혜를 받지 못했으며 신밖에 의지할 데가 없게 된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런
사람들만이 천국을 본다고 한다. 이것은 엄청난 역설이다.”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