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9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P. 119
정풍파定風波
숲을 지나다 나뭇잎 때리는 빗소리가 들려도 괘념치 말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지나간들 어떠하랴
죽장과 짚신이 말 탄 것보다 가벼운데 누구를 두려워하랴
도롱이 하나면 한평생 안개비 내려도 살아갈 수 있다네
차가운 봄바람에 취기가 날아가니 조금은 싸늘하구나
문득 산 능선에 걸린 석양이 반가운데
고개 돌려 방금 비바람 치던 곳을 돌아보네
2)
돌아가리라, 비바람이 불든 맑게 개든 개의치 않고
큰 비가 내려 옷이 다 젖고 장대비가 나뭇잎을 때려도 소동파는 괘념치
않습니다. 오히려 비를 맞으면서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걸어가는 그
의 경지는 비에 구속되지 않는 경계를 보여줍니다. 이 시의 경지는 참으로
출중합니다.
시인은 도롱이를 걸쳤습니다. 도롱이는 농민들의 우비 같은 것입니다. 안
개비 자욱한데, 시인은 자유롭고도 평범한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말로
는 평범하다지만 사실은 전혀 평범하지 않습니다.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
다가 필화사건을 겪고 그곳으로 유배된 지 3년째였으니 그의 인생에 먹구
름만 가득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이 시의 자아는 초월적 자아이고, “누구
2) 『東坡全集』 「定風波·三月七日」, “莫聽穿林打葉聲, 何妨吟嘯且徐行. 竹杖芒鞋輕勝馬, 誰怕? 一蓑煙雨
任平生. 料峭春風吹酒醒, 微冷, 山頭斜照卻相迎. 回首向來蕭瑟處, 歸去, 也無風雨也無晴.”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