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고경 - 2021년 9월호 Vol.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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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기楞伽寶月塔記’라고 써져 있다. 이 비는 원래의 완전한 모습으로 있는 것
             이 아니다. 1586년 남원에 사는 양대박梁大樸(1543-1592) 선생이 지리산을
             여행하면서 보았을 때는 비의 일부가 깨진 채로 길거리에 넘어져 있었다고

             한다. 1690년 이 절을 중창하고 1714년에 이 비를 다시 세울 때 절의 승려

             들이 깨진 비석이 바로 서지 않으니까 파손된 부분을 보완하여 완성된 모
             양을 만든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바로 세우기 위하여 파손된 부분을 더 깨
             어내고 편편하게 만들어 받침대 위에 세웠다. 그래서 지금과 같이 가로 세

             로의 균형이 맞지 않는 이상한 모습이 되었고, 내용도 일부 멸실되어 버렸

             다(사진 13).
               이 비문은 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있었는데, 1919년에 조선총
             독부에서 간행한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에 실리며 세간에 널리 알려지

             게 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이 비문의 해석과 번역을 놓고 없어진 부분을

             추론 보완하거나 있는 그대로를 번역하거나 하는 등 전문가들의 노력이 이
             어져왔다. 이 비문을 누가 짓고 썼느냐에 대해 그간에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최치원의 글에 관하여 많은 연구를 한 최영성 교수는, 이 비문은 신라 효공

             왕 8년인 904년 이후에 지어진 것이고, 이 비문을 지은 사람은 최치원이 아

             니고, 당나라에서 빈공과에 합격하고 귀국 후 수금성군守錦城郡 태수太守를
             지내는 등 활약하며 왕명으로 장흥의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명寶林寺普照

             禪師彰聖塔碑銘」과  제천의  「월광사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명月光寺圓郞禪師大寶
             禪光塔碑銘」을 지은 김영金潁(?-?)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사진 14).

               실상사는 장엄한 지리산 자락에 있어서도 그렇거니와 절 곳곳에 이끼 낀
             고승들의 부도탑들이 있어 사역寺域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수행자들이 살
             다가 간 공간임을 강하게 느낀다. 그들이 터득한 깨달음은 과연 무엇일까?

             모든 것이 공空한 것을 깨달은 것인가? 인간의 문제는 인간에게서 생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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