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7 - 고경 - 2021년 9월호 Vol.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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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볼  수  없는  불교만의  고유한  사상이다.  한편  불교에서는  윤회(輪廻,
             saṃsāra)를 중요한 교리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불교에서는 윤회의 주
             체, 즉 고정 불변하는 실체적인 아뜨만(ātman, 自我)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

             지 않는다. 그러면 당장 문제가 제기된다. “무엇이 윤회하고 누가 과보를 받

             으며 누가 열반을 성취하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윤회의 의미와
             기원에 대해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윤회輪廻라는  용어는  산스끄리뜨  상사라saṃsāra를  번역한  말이다.

             saṃsāra는 saṃ과 sāra의 합성어이다. saṃ은 ‘함께’라는 뜻이고, sāra

             는 ‘달리다, 빨리 움직이다, 흐르다, 건너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saṃsāra
             는 글자 그대로 ‘함께 흐르는 것’ 또는 ‘함께 흘러감’이라는 뜻이다.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철학 가운데 짜르와까(Cārvāka, 唯物論)를 제외한

             모든 종교와 철학은 윤회사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인도의 종교·철학은 모

             두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다. 이들의 공통
             점은 나름대로 수행과 해탈의 사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의 종교·철학에서 말하는 윤회란 어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지은 자신의 업業을 가진 영혼이 다른 곳으로 가서 다시 태어나

             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자신이 지은 업이 다시 태어날 세계, 종류, 계급,
             성性, 모습 등을 결정짓는다고 한다. 그러나 업이 남김없이 소멸되면 윤회
             는 끝난다. 즉 지은 바 업이 없으면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이것을 ‘해탈

             (解脫, mokkha, Sk. mokṣa)’이라고 한다.

               그런데 힌두교에서는 윤회의 주체로 아뜨만(ātman, 自我)을 내세우고, 자
             이나교에서는 지와(jīva, 영혼)를 내세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와 같은 윤
             회의 주체를 내세우지 않는다. 또 힌두교에서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상태’

             를 해탈이라고 하고, 자이나교에서는 ‘영혼이 모든 업에서 벗어나 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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