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5 - 고경 - 2021년 9월호 Vol.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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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인간을 교화하고 희망을 가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는 현실의 모순과 악과 불의를 은폐시키고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눈가림
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은 예나 지금이나 가시지를 않는다.
불교가 타력신앙이 아니라 자력신앙인 점에서는 종교로서 탁월한 우수
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제멋대로 ‘불교가 이런 것’이라고 각
자 떠드는 바람에 불교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
래서 나에게는 봉암사 태고선원장을 지내신 정광 화상의 아래와 같은 말
이 눈과 귀에 들어온다.
“요즈음 참선하는 이들이 불립문자不立文子 교외별전敎外別傳을 맹
신하여 전적典籍을 무조건 문외門外한다. 그러나 옛 선지식들은 반드
시 경론經論을 수학하고 율장律藏을 익힌 후 사교입선捨敎入禪의 지
취旨趣들을 읽고 배웠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부처님 제자로
삼장三藏의 가르침을 봉행하지 않고, 조사의 가풍을 금과옥조로
여기지만 어록語錄 읽는 이가 드물다. 병이 골수에 들어도 자각하
지 못하니 이것이 오늘의 선가풍토禪家風土다.”
부처님이 인간에게 가르침을 보여준 바가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알아야
길을 나서는 발걸음을 재대로 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못하면, 방이 비어가고 레스토랑으로 팔리거나 숙박시설로 전용되는 서구
의 수도원의 모습이, 우리나라에도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이블』 주석서가 늘어나고 성직자들의 대중적 잡문들
이 때로 시중市中의 종이 값을 올리는 일이 더러 생겨나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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