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7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P. 107
코 뒤진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자 했다. 그
러므로 『대동선교고大東禪敎考』와 「석지」의
편찬은 조선 후기 실학자의 자국사와 문
화전통에 대한 주체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울러 그동안의 사서가 황당하
고 믿을 수 없는 허무맹랑한 것으로 인식
한 그들은 실증적 자세로 불교사를 면밀
히 재검토하고 복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였
다. 이러한 노력은 중국 사서에 수록된 우
리나라 불교 기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넷째, 우리나라 불교사에 대한 소개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조선왕조는 건국 초 사진2. 『해동역사』 권제1 「세기世紀」 부분.
부터 불교를 이단시하여 사상과 신앙은
물론이고 관계 서적조차도 철저하게 금기시했다. 이러한 부정적인 선입관
은 불교 자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불교사에 대한 무지를 불
러일으켰다. 지나간 역사에 대한 연구나 편찬에서 불교에 대한 기술은 이
단임을 전제하여 혹독한 비판을 받았고 삭제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
히 불교사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부진하게 했고, 그 이해조차도 드문 일이
었다. 『삼국사기』와 중국의 역사서에 수록된 우리나라의 불교 기사는 우리
의 불교문화 전통이 중국과 대등한 면을 지니고 있음을 중국에 알리는 것
임과 동시에 그동안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선입관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
었던 것이다.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