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9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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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교장은 경·율·논 삼장으로 이
             루어진 대장경과는 달리 동아시아에
             서 만들어진 주석서만 따로 모은 것

             으로 어찌 보면 대장경 해설서의 성격

             을 갖는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역대
             논소만을 집성하여 간행한 것은 의천
                                                사진 3. 조선지나순례행.
             이 처음이었고, 이는 고려 불교의 교
             학 이해 수준이 상당했음을 잘 보여준다. 의천은 개경 흥왕사에 교장도

             감을 설치하여 대규모 간행사업을 벌였는데, 유식학 분야의 책들이 많
             아서 법상종 승려들도 작업에 참여했다. 이때 만들어진 교장의 목록집인
             『신편제종교장총록』 3권에는 모두 1,010종 4,850여 권의 서명이 기재되어

             있다. 이를 통해 당시 동아시아 세계에서 애용되고 있던 불교 장소의 현황

             을 파악할 수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오야는 교장 연구에 앞서 해인사 고려대장경 보유판을 비롯한 사간판에
             대해 조사하고 서지학적 검토를 했다. 해인사의 보유판과 사간판에는 선

             종 전등사서인 『조당집』처럼 세계 유일본도 들어 있다. 그는 고려대장경의

             명칭, 조조 횟수, 구조본과 신조본의 차이, 대장경의 계통 분석 등을 검토
             했고, 또 의천의 사상과 신앙, 선종에 대한 인식 등을 다룬 논고도 썼는데
             이를 통해 그가 고려 불교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볼 수 있다. 오야가 교

             장을 비롯한 고려시대 간행 불서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일본의 경론 간행

             을 연구하면서 속장(교장)의 영향이 매우 컸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장경을 거쳐 의천의 교장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교장을
             대장경의 뒤를 이었다는 뜻의 속장이라고 칭했고, 의천의 속장 간행 사업

             을 동아시아 불교 사상의 위업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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