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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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5. 불교학술원 아카이브 - 불교학술원 아카이브 2021. 9. 5. 불교학술원 아카이브 - 불교학술원 아카이브
금강저(金剛杵) / 金剛杵第十五號 - [00011_0015_0001_a] 금강저(金剛杵) / 金剛杵第十九號 - [00011_0019_0001_a]
사진1-1. 금강저 표지(15호). 사진1-2. 금강저 표지(19호, 한용운 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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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금강저 속간에 제하야」(19호)와 강유문의 「동경조선불교유학생연혁일
별」(21호), 김진원의 「금강저 속간에 제하야」(22호) 등을 참고로 재구성할 수
있다.
『금강저』는 1924년 5월 1일 동경에서 창간되었다. 1-14호까지는 현재 전
하지 않으며, 부전 잡지의 내용은 21호의 부록으로 실린 목차를 통해 확
인할 수 있다.
창간호에 동참한 ‘동인同人’으로는 이지영, 김상철, 이덕진, 주영방, 강재
원, 이영재, 김태흡, 김정원, 유이청 등이다. 이지영(이용조), 이영재, 김태흡
은 이후의 발행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대표적인 유학생들이다. 처
음에는 별다른 기금 없이 각자의 ‘주머니 돈’을 모아 간행하였기 때문에 재
정적 형편은 매우 열악하였다. 발행을 주도한 유학생들 스스로는 『금강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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