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7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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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도 지리산 기슭의 한 마을을 지나
다 닭 울음소리를 듣고 깨쳤습니다. 7)
새소리를 듣고 깨닫는 것은 어떤 체
험일까요? 새소리를 듣고 생명의 본질
인 진여眞如[우주만물의 실체]를 느꼈다
는 것이겠지요. 통찰의 순간을 삼매라
고도 합니다. 완전히 현존하는 무심의
순간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 신성함
을 깨닫기 위해서는 현존이 필요합니 사진 3. 팔공산 왕건길 안내석.
다. 어떤 중간물도 개입시키지 않고 보
고 듣는다는 것은 그만큼 귀중한 체험
입니다.
새소리를 듣고 깨달은 선사들의 이
야기는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범부는
그 이야기의 심층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기껏해야 그냥 아는 듯한
기분에 그치고 마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좀 더 쉬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새소리를 듣고서 영혼이 활짝 열린 사
사진 4. 산을 내려오는 길에 만난 밤나무,
람들은 서양에도 적지 않습니다. 로자 가을이 깊어간다.
7) 서산대사가 용성龍城에 사는 벗을 만나러 가는 길에 성촌星村을 지나가다 한낮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아 두 수의 시를 읊었다. “髮白非心白.古人曾漏洩.今聽一聲鷄.丈夫能事畢./ 忽得自家處.頭頭只此
爾.萬千金寶藏.元是一空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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