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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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1871-1919)는 150cm 정도의 작은 키에 절름발이이자 유대인인
여성 혁명가입니다. 그녀는 감옥 속에서 삶과 역사와 자연의 섭리를 성찰
했습니다. 특히 작은 박새의 숨결에서 삶의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마
틸다 야코프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제 묘비에는 “zwi-zwi” 두 음절만 적어 주세요. 이 두 음절은 박
새가 지저귀는 소리예요. 8)
“쯔비, 쯔비.”
슬프고도 아름다운 묘비명입니다. 슬픈 것은 그녀가 ‘감옥’에서 이 편지
를 썼기 때문이고, 아름다운 것은 그녀가 자아마저 버릴 정도로 박새를 사
랑했기 때문입니다. 자아를 버리면 무無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
나임을 알게 됩니다.
똑 같은 세계에서 살아가는데 우리는 왜 깨우치지 못하는 걸까요? 어떤
사람은 새소리가 풍요롭고 의미심장한 것으로 들리는데 우리들에게는 왜
진부하고 하찮은 소리로 들리는 걸까요. 저 역시 오늘 딱따구리 소리를 듣
고 가슴이 두근거리기는 했지만 심층 경계를 본 것은 아닙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과 똑 같은 길이지만 전혀 다른 길입
니다. 내려오면서 보니까 밤나무에는 밤이 영글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산길을 걸으면 반드시 자신의 생각을 영글게 만들어가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8) 로자 룩셈부르크, 베를린 감옥에서 〈마틸다 야코프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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