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6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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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징선사는 804년 오늘날의
공주 지역인 웅진熊津에서 명망
높은 김씨 가문의 후예로 태어
나 19세에 화산花山의 권법사勸
法師에게로 출가하여 열심히 정
진한 끝에 무리 중에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며 가장 뛰어났
다. 그는 이렇게 발심 수행한 이
후 827년 흥덕왕興德王(826-836)
2년에 오늘날 충남 서산시 운산
사진 4. 보조선사영탑비의 전액. 면 용현리에 있는 가양협산加良
峽山의 보원사普願寺로 찾아가
그곳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오늘날 이곳에는 광활한 터에 있었던 그 많은
당우들은 모두 사라져서 없고 절터만 남아 있다. 그 후 그는 억성사에 주
석하고 있는 염거선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그로부터 그 법인法印을 전
수받았다. 스승에게서 공부한 후 837년에 동학인 정육貞育 화상, 허회虛懷
화상 등과 함께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고 당나라로 건너가서 선지식을 찾
아 전국의 15개 도道를 모두 편력하면서 공부한 결과, 우리나라 조사가 설
한 바에 더 보탤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더 이상 수고로이 이역 땅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드디어 840년 2월에 평로사平盧
使를 따라 신라로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화를 펼쳐나갔다. 당시 체징선사의
명성을 듣고 전국에서 찾아와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 드디
어 무주의 황학난야黃壑蘭若에 머무르게 되니 이때가 헌안왕憲安王(857-861)
이 즉위한 이듬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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