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4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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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의 승탑도 그 다음 것이니 현존하는 승탑 중에서 오래된 것으로 가치
          가 높다. 도의선사탑은 석탑의 기단에 팔각의 탑신과 팔각의 지붕돌을 쌓
          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염거선사탑이나 체징선사탑은 팔각원당형

          의 양식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것으로 승탑의 양식 가운데 가장 화려한 것

          이다.
           보림사는 그 후 여러 차례 중창과 중수를 거치면서 고려시대 말까지 엄
          청난 영향력을 가진 사찰로 발전하였고 20여 동의 전각을 갖춘 대사찰로

          유지되어오다가 1950년 6·25전쟁 때 공비들이 소굴로 이용하다가 도주하

          기 전에 불을 질러 대웅전 등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타 없어졌고, 천왕문天
          王門, 사천왕四天王, 외호문外護門만 남았다. 불타 버린 대웅전은 서쪽을 향
          하여 세운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된 중층팔작重層八作 지붕의 큰 건물이

          었다.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2층까지 통해서 한 방으로 만들고, 중앙 단상

          에는 금동석가여래상과 양쪽에 협시불을 안치하였다. 이후 근래에 와서
          대적광전을 다시 지어 대웅보전에 있었던 비로자나불을 옮겨왔다. 현재의
          대웅보전도 원래의 모습대로 중층의 팔작지붕으로  복원하여 건립한 것이

          다(사진 9).

           일주문은 공포를 여러 개 얹어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었다. 정면에는 ‘가
          지산 보림사迦智山 寶林寺’라고 새로로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안쪽에는 ‘선종
          대가람禪宗大伽藍’이라고 큰 글씨로 쓴 현액이 걸려 있다. 이 현판에는 순

          치順治 14년에 예조禮曹 수어청守禦廳 양사첩액兩司帖額이라는 글자와 옹

          정雍正 4년 3월 시행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즉 효종 8년 1657년에 국가
          가 수호하는 사찰로 되고 영조 2년 1726년에 이를 시행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보림사는 조선시대 효종 때 국가수호사찰로 정해져 영조 때 시행

          된 절이다. 그 현판 아래에는 ‘외호문外護門’이라는 작은 현액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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