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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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1975년에 선원도 열고 지금의 수도암을 만드셨다.
수도암 행자 생활 중에 스님은 직지사直指寺로 가서 관응觀應 스님을 계
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관응스님은 당시에 이미 대강백으로 이름난 분이
었다. 그때 수계 도반으로 설악산 영시암을 중창한 도윤스님을 만났다. 도
윤스님은 은사가 관응스님으로 고우스님보다 나이가 여섯 살 많았지만, 노
년까지 교류한 도반이었다. 도윤스님은 경북 선산 출신으로 동국대 사학
과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농촌계몽운동을 하다가 당숙이었
던 김동화金東華 동국대 교수의 소개로 속리산 복천암에서 강의하던 관응
스님 문하로 출가하였다. 뒤에 관응스님이 직지사로 오시자 따라와서 함께
사미계를 받았다.
청암사 강원 시절
스님이 출가한 다음 해인 1962년에 수도암과 직지사를 오가던 스님들이
수도암 아래 청암사를 정화해서 강원으로 만들자고 뜻을 모으게 된다. 당
시 청암사는 대처승들이 처자식을 거느리고 일가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청암사 강원은 청암사 극락전에서 공부했는데, 고봉스님이 강주, 우룡스
님이 주지, 고산스님이 총무, 고우스님은 학인이면서 재무를 맡았고, 학인
은 7~8명 되었다. 지금 공주 학림사 오등선원 조실 대원스님, 해인사 율주
를 지낸 종진스님, 종하스님 같은 분들이 학인으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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