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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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끝에 찾아간 곳이 김천 수도산 수도암修道庵이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거나 남들처럼 구도 발심으로 절에 간 것이 아니었다. 어머님의 죽음과
병고로 방황하다가 마지막으로 발길이 닿은 곳이 바로 수도암이었다.
지금 수도암은 이름난 선원이고 길도 잘 닦여 있고 불사도 크게 하였지만,
스님이 출가할 당시에는 마을에서 수도암 가는 길조차 없었다. 그래서 청암
사靑巖寺 극락전에서 오솔길로 걸어서 올라갔다. 수도암은 참으로 깊은 암자
였다.[스님께서는 입적하시기 몇 달 전에 상좌들과 마지막으로 수도암을 참배하셨다.]
수도암에 가니 은사 되는 법희法喜스님이 주지로 계셨다. 법희스님은 직
지사가 본사로 은사가 직지사 주지 봉인스님이었다. 봉인스님의 은사는 역
시 직지사 주지를 지낸 퇴운원일退雲圓日(1877-1939)스님이다. 퇴운스님은
근세에 유명한 제산정원霽山淨圓(1862-1930) 선사의 사제 되는 분이니, 제산
스님과 법형제로 은사가 사명대사의 법맥을 이은 해인사 우송友松스님이
다. 퇴운스님은 지금 직지사에 비가 세워져 있다. 한암스님이 지은 퇴운원
일선사비문에 “평소에 근검 절약하였고, 시주물을 아끼고 보호하여 논
100여 석을 사들여 그 세수로 선원의 양식으로 삼았는데, 임종 시에 유언
하기를, 이것을 다른 데에 쓰지 말고 선방 수좌들의 양식으로만 삼아라.”
라고 한 분이시니, 그 신심과 원력을 알 수 있겠다. 스님은 여기서 법희스
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고 ‘혜운慧雲’이라는 법명을 받아 행자 생활을 시작
하게 되었다. 그러니 고우스님의 법맥法脈은 법희-봉인-퇴운원일-우송…
사명-서산…태고보우국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수도암 행자 시절과 사미계 수지
그렇게 스님은 1961년 25세에 수도암에서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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