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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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성주와 폐결핵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은암당 고우스님은 일제강점기였던 1937년 12월 30일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서 의성 김씨 가문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상 대대로
성주군 용암면에 거주하였지만, 증조할아버지 대에 인근 고령군 운수면으
로 이주하여 스님은 그곳에서 나고 자라게 되었다.
부모님은 스님의 이름을 김정완金丁浣이라 지었지만 면사무소 호적 담당
자의 실수로 호적상의 이름은 김정원金丁院으로 되었다. 당시 이름을 고치
는 절차가 복잡하여 주민등록에도 김정원으로 되었고, 그것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스님께서 태어난 시대는 일제강점기로 우리 민족에게는 고난의 시절이었
다. 스님의 집안은 친가와 외가의 할아버지가 모두 면장을 지낼 정도로 지
역 유지여서 풍족하지는 않아도 어렵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다. 집안 어른
들의 남다른 교육열로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초등
학교를 다니다가 8·15광복을 맞아 귀국하여 조상들이 살던 성주로 와서
정착하게 되었다.
스님의 부친께서는 친구와 술을 좋아하고 노름판에 어울리느라 가정을
소홀히 하였다. 그러다 보니 어머님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살면
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실 수밖에 없었다. 스님은 어린 나이에 어머님의 고
충도 모르고 어머님께 많이 응석을 부리고 의지하였다. 뒷날 스님께서 법
문하실 때 어머님이 가끔 “내가 너희 집에 시집와서 평생 고생만 한다.”라
고 하시던 말씀을 떠올리시곤 하셨다. 시집와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
아 키우셨음에도 평생 ‘너희들 집’이라 하시며 객客처럼 사시다가 일찍 가
신 어머님의 삶을 안타까워하시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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