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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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일 아침에> 등에는 신심을 강조하는 내
             용이 주로 담겨 있다. 백우용 작곡, 권상로
             작사의 <봄마지>(7호)를 비롯한 이들 작품은

             근대 찬불가의 역사에서 출발점으로서 의의

             가 있다(사진 3). 권상로의 시도는 조학유曹學乳
             (미상-1932)의 <찬불가> 연작[『불교』 28호~41호,
             1926.10~1927.11]으로 발전적으로 전개되었다.

               안진호는 기존의 창가, 찬불가를 『불자필

             람』과 『석문의범』에 수록함으로써 이를 공식                  사진 3.  권상로의 찬불가 <봄마지>
                                                           (제7호).
             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안진호의
             더 큰 역할은 다양한 사찰 답사기, 기행문을

             발표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점이다. 그는 『불교』에 「양
             주각사순례기」, 「천불천탑을 참배하고서」,
             「사찰사료수집의 길을 떠나면서」 등 당시 사

             찰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기행문

             을 남겼다(사진 4).
               1920년대는 이광수, 최남선 등의 국토기행
             문이 독서계의 폭넓은 호응을 받던 시기다.                   사진  4. 안진호의 「양주각사순례기」
                                                          (제29호).
             이들의 기행 바탕에 나라 잃은 지식인의 자아

             찾기가 중요한 동인이 되었음에 비추어 볼 때, 『불교』지의 기행문은 우리의
             역사를 찾아 민족의 전통을 계승하자는 이 시대의 담론에 함께 참여한 것
             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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