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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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이것이 당시에 일국 왕사의 지위를 점하고, 임제종풍을 직
전直傳하여 선양하던 옛 도량이오, 현재 조선에 산재한 7천여 승려
의 종조宗祖가 계시던 옛 가람이다. (중략) 삼십본산 위에 총 본산
이 될 만한 태고암! (중략) 조선 법계의 초조初祖가 되시는 태고화
상! 그 유허, 그 유적에 대하여 숭봉崇奉이 이렇게 소홀하고 관념
이 이렇게 등한하기는 진실로 의외이다 아니다 말할 수 없다. 화상
께서 일찍이 이 암자에서 태고암가를 지어 석옥 청공 선사에게 드
렸더니 (중략) 오늘의 현상이 되기까지 이르렀다 함은 부끄러움을
면치 못하겠고, 얼굴을 들어 태고화상의 법손이라는 말을 남들에
게 할 수 없게 되었다.[제1호, 41-42면, 필자 현대어 윤문.]
태고암은 전 조선의 7천여 승려의 종조가 계시던 곳으로 30본산의 상위
에 위치하는 총본산이 될 만한 절이라는 점을 말하고, 지금의 태고암은 그
야말로 남부끄러울 정도로 쇠락한 광경이어서 스스로 태고화상의 법손이
란 말을 하기 어렵다는 자괴감을 토로하였다.
태고암 관련 사진과 <태고암가> 분과, 그리고 기행문 「태고암배관기」
는, 한국불교의 정체성은 태고보우를 종조로 하는 임제종에서 찾을 수
있으며, 앞으로 『불교』가 이를 구현하는 매체로 존재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진을 선별하고 <태고암가>를 소개한 이는 물론, 기
행문을 작성한 ‘안두타贋頭陀’ 역시 발행인인 권상로權相老(1879-1965)로
추정된다.
불교계에는 1910년대부터 태고보우를 종조로 인식하고 종통宗統을 수립
하고자 하는 일련의 흐름이 있었다. 1914년 음력 3월 16일 태고사에서 불
교계 주요 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태고국사의 부도 앞에서 다례를 행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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