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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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한 시기는 약 1년 정도 지속되었다. 외부 문인들이 편집진에서 물러난
          1929년 말부터 잡지의 문예지적 성격은 축소되었고 외부 작가의 투고도 거
          의 사라져 갔다. 그 대신 순례기를 집중 수록하여 잡지의 종교성을 강화하

          였다. 독자 확산을 위해 일반 문인들에게 문호를 열어 종합잡지의 성격을

          가미했지만, 종단의 기관지라는 본연의 위상과 충돌하는 지점이 있었을 것
          으로 본다. 물론 보수적인 교계의 여론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 시기에 등장하는 대표적 기행문은 김태흡(김소하, 수송운납)의 「남유구

          도예찬南遊求道禮讚」과 「삼방약수포전도행三防藥水浦傳道行」, 안진호(만오생)

          의 「천불천탑千佛千塔을 참배하고서」, 주동원(동산인)의 「육수삼천리陸水三千
          里」, 강유문의 「순강천리巡講千里」 등이다. 이들 기행문은 단순한 여행기라기
          보다 일종의 순례기, 포교전도기, 참배기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국토의 종

          교적 해석이라는 의미가 있다. 문학적 다양성을 추구하던 『불교』지의 내용

          이 이제는 국토를 불국토로 인식하게 하는 다양한 기행문으로 대체된 것
          이다. 한편 이는 접근이 쉽지 않았던 한반도 남부와 북부 지역의 불교 상
          황에 대해 일반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정보 전달의 기능도

          훌륭하게 담당했을 것을 보인다.

           이처럼 『불교』는 시기별로 당대의 독자층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면서 편집
          방침을 적절하게 수정하고, 소재 개발에 끊임없이 노력한 편집진의 노력이
          곳곳에 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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