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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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에 유입된 기자들-문예지 지향
『불교』지 초기에는 주요 독자를 사찰의 구성원이나 ‘신불가信佛家’를 넘어
생각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년대 후기로 가면서 불교의 저
변을 넓히고 독자층의 확장을 위해 신입 직원을 뽑아 종교지의 성격에 문
예지와 종합지의 성격을 가미하고자 하였다. 1928년 5~6월에 불교사佛敎
社에 입사한 직원으로는 철학박사 백성욱, 문학사 김진린, 종교학사 김태
흡이 있다. 여기에 당시 문단에서 문예지 발간으로 주목받던 젊은 시인,
소설가(유엽, 방인근)와 삽화를 담당할 화가를 직원으로 영입하였다. 또한 당
시 여성계에서 신여성의 이론적 실천적 선구자로 명성이 있던 김일엽을 편
집진에 포섭함으로써, 『불교』지는 동시대에 명멸한 문예지 못지않은 진용을
갖추었다. 동시에 “편국偏局하던 회보의 체재를 일변하야 순전히 대중독물
로 자기自期하야 문예, 학술, 온갖 방향을 모다 일초하야 고급적 학술잡지
가 되게” 하고자 하는 방침과 자부심을 공표하였다[48호, 1928.6, 90-91쪽].
그 결과 문예인사가 유입된 46·47호(1928.5)부터 62호(1929.8)까지 1년 넘
게 불교사 안팎에 포진한 문인들의 시, 소설, 희곡 작품이 집중적으로 수
록되어 문예잡지의 성격이 강화되었다.
1928~1929년에 투고한 시인은 류춘섭(유엽), 백기만, 장회근, 탁상수(늘
샘 와룡산인) 등이다. 소설가와 대표 작품으로는 유엽의 <범종을 울닐 때>,
방인근의 <산으로 가는 남녀>, 홍사용(露雀)의 <귀향>이 있고, 본명을 알
수 없는 큰터의 <무명지>와 백산白山의 <여인旅人>이 3회씩 연재되었다.
희곡으로는 박승희(春崗)의 <홀아비 형제>, 홍사용(露雀, 白牛)의 <벙어리
굿>(삭제됨)과 <흰젓>, <제석除夕> 등이 있다. 전문이 삭제된 채 제목만 전하
는 <벙어리굿>은 일제의 억압 아래 자주적 발언권을 제약받은 우리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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