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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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불러옵니다(사진8). 아, 여기
                                              서 바라보면 아름다운 풍경만
                                              존재하고 ‘나’라는 의식마저 잠

                                              시 동안 사라져 버립니다.

                                                어떤 건물에 들어갔을 때 바
                                              로 눈앞에서 날아 들어오는 처
                                              마의 모양은 사람의 마음을 움
          사진 6. 연수전과 만세문.
                                              직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

                                              니다. 물론 건물을 지은 옛날
                                              목수는 그런 것까지 다 염두에
                                              두고 지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나무는

                                              놀랍게도  만져보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감촉이 부
          사진 7. 고운사 연수전.
                                              드럽습니다.  우리는  연수전의
                                              난간과  기둥을  만져보며  고색

          창연함 속에서 반음계씩 낮아진 저음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즐거
          움을 느꼈습니다.
           저 단정한 기와지붕, 그리고 살짝 휜 처마 아래 떠도는 어둠은 환상적입

          니다. 처마 밑은 어둠 속에 묻혀 있어서 밖에서 보면 웅숭깊은 그늘만 보

          입니다. 처마 밑 그늘은 매우 양질의 그늘입니다. 저 그늘 아래 앉아서 편
          안하게 쉬고 싶어집니다. 저런 그늘은 우리들의 불안을 다독여 주는 효과
          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처마 밑의 웅숭깊은 양질의 그늘을 읽을 줄 알았

          던 선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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