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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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에도, 이천 년 전에도 그런 그늘의 감촉을 느낀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만 오늘은 그중 원오극근 선사가 느낀 그늘의 감촉에 대해 생각
             해 보겠습니다. 1125년에 36세의 대혜종고(1089-1163)가 가르침을 받기 위

             해서 천령사로 62세의 원오극근(1063-1135)을 찾아갑니다. 만난 지 40일이

             지난 어느 날 원오극근이 법당에 올라 법문을 합니다.


                  “어떤 승려가 운문雲門(864~949)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모든 부처

                  가 나오는 자리입니까?’라고 하자, 운문이 말했다. ‘동산東山이 물

                  위로 간다’고 하였는데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문득 누가 묻기
                  를 ‘무엇이 모든 부처님이 나오는 자리입니까?’라고 한다면 나는 그
                  에게 말하겠다. ‘따뜻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니, 전각殿閣에서

                  조금 서늘한 기운이 생기는구나.’ 대혜大慧는 말끝에 문득 앞뒤의

                  시간이 끊어졌다.”    2)


               이 법문에는 세 겹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화자話者는 원오극근이

             고, 청자聽者는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대혜종고입니다. 법문의 구절

             인 ‘훈풍자남래 전각미생량薫風自南來, 殿閣生微涼’은 당나라 유공권柳公權
             (778-865)의 작품입니다.
               이 구절은 원래 당 문종(재위 829-840)이 앞 2구를 짓고 신하들에게 댓

             구를 짓게 한 것인데, 유공권의 댓구가 가장 좋다고 문종이 골라서 그 시





             2) 『 오등회원五燈會元』, 권제19,  “南嶽下十五世上昭覺勤禪師法嗣徑山宗杲禪師  臨安府徑山宗杲大
                慧普覺禪師, 且囑令見圓悟. 師至天寧, 一日聞悟陞堂, 舉:“僧問雲門:“‘如何是諸佛出身處?’
                門曰:‘東山水上行.’  若是天寧即不然.  忽有人問:‘如何是諸佛出身處?’  只向他道:‘薰風自南
                來,殿閣生微涼.’” 師於言下, 忽然前後際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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