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P. 93

설명된다. 보통 혼침은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 의식이 명료하지 않거나 침
             을 흘리며 꾸벅꾸벅 조는 등의 증상을 말한다. 반대로 도거는 온갖 잡생각
             으로 마음이 들떠 화두들기나 수행에 집중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그런데 8

             가지 대수번뇌심소에서도 혼침과 도거를 순서대로 나열하고 있다. 이번 호에

             는 방일과 함께 혼침과 도거라는 세 가지 번뇌심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방일放逸, 제멋대로 움직이며 통제되지 않는 마음

               방일放逸(pramāda)은 대수번뇌심소의 세 번째 항목이다. 경전에는 방일

             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지만 선뜻 의미가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방일放逸이라는 한자의 뜻을 살펴보면 ‘내려놓다’, ‘달아나다’라는 의미로
             조합되어 있다. 즉 마음을 잘 제어하지 못하고 놓쳐버림으로 인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상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비달마품류족론』에서는 방일에 대해 악법惡法을 끊고 선법善法을 얻
             음에 있어 ‘닦지 않는 마음[不修]’, ‘익히지 않는 마음[不習]’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선행은 실천하고 악행은 삼가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놓쳐버려서

             마음이 제멋대로 떠도는 것이 방일이라는 것이다.

               『성유식론』에서도 방일에 대해 “잡염품을 방지할 수 없거나 청정품을 닦
             을 수 없고 방탕하게 흐르는 것이 본성[縱蕩爲性]”이라고 했다. 번뇌의 대상
             에 물드는 것을 막지 못하고, 청정행을 닦지 못하여 마음이 제멋대로 흘러

             가는 것이 방일의 성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방일하게 되면 ‘나쁜 일은 늘

             어나고 좋은 일은 훼손되는 상황[增惡損善]’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다만 방일이라는 심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게
             으름을 의미하는 해태와 삼독[탐진치]으로 인해 번뇌에 오염되는 것을 막지

             못하고, 깨끗한 마음을 닦지 못하는 것을 총체적으로 방일이라고 한다고



                                                                          91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