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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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수행과 전법을 위한 삼보정재를 사유화하니 불교의 심각한 위기였다.
               1954년부터 선학원에 모인 비구승들은 “불법에 대처帶妻는 없다”는 기
             치로 대처승들을 교단과 사찰 밖으로 나가기를 촉구하고 조계사 대웅전에

             서 철야기도에 들어갔다. 선학원을 거점으로 효봉, 동산, 금오, 청담스님

             등이 중심이 되었다. 전국 주요 사찰은 이 정화 문제로 비구와 대처 측의
             치열한 대치가 벌어지고 급기야 세속 법정에서 재판까지 벌어졌다. 이 문
             제는 큰 사회 문제까지 되어 1962년에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문교부가

             적극 개입하여 비구승과 대처승의 화합을 종용하여 마침내 비구승 중심의

             통합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하게 된 것이다.


                청암사 정화와 갈등, 그리고 도피




               비구승 중심으로 조계종단이 출범하자 산중 사찰에도 정화의 물결이 밀
             어닥쳤다. 청암
             사 큰절을 장악

             하고 있던 대처

             측과 개울 건너
             극락전  강원의
             비구 측이 정화

             로 시비하던 중

             멱살잡이와  주
             먹다짐이  일어
             나 양쪽이 다치
                               사진 2.  입적 4개월 전에 마지막으로 참배한 청암사. 학장 지형스님이 고우
             는 불상사가 일              스님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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