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고경 - 2021년 12월호 Vol.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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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대각국사중창건도기>의 선암사.


           성리학자들이 지배층이 된 조선은 자신의 생활 전반에 불교적 습관이 아
          직 남아 있음에도 공적으로는 불교를 멀리했다. 간혹 불교와 관계를 맺더

          라도 그것은 조상에 대한 효孝 차원의 제사나 산소 관리 정도이며 부득이

          하는 일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세상이 이렇게 변해 가고 있었기 때문에 불교는 더 이상 지배층만을 바
          라보고 살 수 없었다. 때마침 사회적 불안과 빈곤에 처해 있던 백성들과 함

          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선각자라도 있었던 것일까? 불교는 백성

          의 고통에 대한 현실적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면서 희
          망이 무엇인지 제시하기 시작했다.
           정성을 다하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기회는 잡을 수 있다는 믿음이 널

          리 퍼졌으며, 이를 믿고 따른 백성들은 그에 합당한 위로를 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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