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4 - 고경 - 2022년 1월호 Vol.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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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호윤우는 조선 후기 불교계의 대표적인 승려 연담유일蓮潭有一(1720-
1799)의 제자다. 그는 13세에 대둔사에 출가하여 백련도연白蓮燾演에게 교
학敎學을 익히고, 연담유일로부터 선학禪學을 수학했다. 무오년戊午年(1798
년) 10월에는 대둔사 청풍요淸風寮에서 강경講經 대법회를 개최했는데 100
여 명의 학인學人들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리고 1811년에는
대둔사 남원南院의 여러 전각이 소실되었을 때 제성濟醒과 은봉隱峰·새
순璽絢과 함께 중창 불사를 일으켜 이듬해 5월 극락전·용화전·지장전
을 새로 지어 대둔사를 쇄신시키기도 했다. 또한 1812년에는 경주 기림
사祇林寺에서 옥석玉石으로 천불千佛을 조성했다. 이 천불을 실은 배는 중
간에 풍랑을 만나 일본에 표류하기도 했지만, 무사히 대둔사 법당에 봉안
되었다.
완호는 서산西山의 의발衣鉢이 대둔사에 전해진 이후 대둔사가 조선 후
기 선교禪敎의 종원宗院으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내외內外로 진력했
던 인물이다. 성품 또한 수행자로서의 면모를 지녀 절 소유지에서 나오는
수확물의 많고 적음을 탓하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의식衣食의 좋고 나쁨
을 분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성품과 수행으로 대둔사 12강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받기도 했으며, 제자는 선禪을 전수받은 제자가
20여 명, 교학敎學을 전수받은 제자가 10여 명, 전계제자傳戒弟子가 8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둔사지』 찬술에 참여했던 초의의순은 문학에, 호의시오는 덕행으로
유명했다. 초의의순은 자字가 중부中孚로, 출가하여 완호의 제자가 되었다.
틈틈이 범자梵字를 익혔고, 초상화를 잘 그렸으며, 전서篆書와 예서隸書의
법칙을 터득했다고 한다. 그는 교리에 정통하면서도 선경禪境을 개척했다
고 한다. 그의 선사상이 온축되어 있는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는 백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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