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0 - 고경 - 2022년 2월호 Vol.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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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시보』의 발행과 친일


           이처럼 학승이자 포교사로서 불교계의 기

          대를 한 몸에 받던 김태흡은 1935년 8월에

          창간된 친일적 성격의 『불교시보』의 발행을
          맡으면서 변절과 시류 영합의 길을 걷게 되었
          다.  그는  창간사에서  “종교  부활·정신  작

          흥·신앙  고취를  부르짖는  심전개발운동에

          기여하는 것”이 『불교시보』의 사명이자 목적
          임을 밝혔다. 그는 『불교시보』를 1944년 4월              사진 3.  김태흡이 발행한
                                                        『불교시보』 창간호.
          까지 펴내면서 총독부가 전시체제 하의 황국
          신민화정책으로 추진한 심전개발운동을 적극 선전하였고, 내선일체, 황

          도불교 등 식민지 통치를 옹호하고 합리화하는 글들을 실었다. 이뿐 아
          니라 대동아 공영권, 학도병 동원 및 국민 총력운동 등 침략전쟁을 옹호
          하는 시국강연에 나서면서 친일활동에 앞장섰다. 1938년 7월에는 일제

          의 괴뢰정권이 세워진 만주국 봉천 관음사의 주지를 겸하기도 했고, 1945

          년 만주 지역 사찰을 관리하는 ‘개교 감독’에 임명되었지만 바로 해방을 맞
          이했다.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전반까지 전시체제기에는 불교계의 자주

          권 추구 및 혁신운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대신 모든 종교와 사회단체를 동

          원하여 추진된 심전개발운동에 학계와 종교계의 저명인사들이 참여했다.
          국민총동원에 의한 전쟁 수행과 황민화를 위한 심전개발운동은 천황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국체를 각인시키고 감사와 보은의 마음을 갖게 하는 정

          신계몽운동이었다. 불교계도 개신교, 천주교, 유교 등 다른 종교 및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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