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7 - 고경 - 2022년 2월호 Vol.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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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흡은 1920년 가을 일본 도쿄로 건너가서 중등 과정을 속성으로 마
             치고 도요대학 인도철학과에 입학하여 2년간 다니다가 중퇴했다. 그는
             다른 유학승들과 달리 사찰의 지원을 받지 않고 신문 배달, 인력거꾼 등

             막노동을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다. 1923년 한국인 수천 명이 죽

             임을 당한 관동대지진을 겪었고, 1924년에는 이영재, 최범술 등과 함께
             『금강저』 창간을 주도하고, 7~15호의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았다. 또한 방
             학 때마다 귀국하여 전국을 돌며 불교 강연회를 열었다. 1926년 3월에

             는 니혼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했는데 당시 『불교』지 소식란에는 “우리 유

             학생으로서 문학사가 된 효시이다.”라고 평했다. 이후 그는 귀국할 때까
             지 도쿄제대 사표편찬소에서 편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집필 활동과 주요 논지



               김태흡이 학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종교와 사회사업 발달의 연구」는
             1926년 7월부터 1928년 7월까지 『불교』지에 연재되었는데 논문의 총론부

             분을 옮긴 것이다. 그 내용은 종교와 사회사업, 사회사업의 개념, 사회사

             업의 역사적 관찰의 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에서는 종교의 발생과
             본질, 불교와 기독교의 사회사업, 응보주의와 연대 책임 문제 등을 다루었
             다. 2장에서는 사회사업의 의의, 목적과 분류, 사회의 질병과 진찰, 빈곤

             의 원인과 사회사업 발생에 대해 서술했다. 3장은 서양 사회사업의 연혁

             을 고대, 중세, 근세에 걸쳐 정리했고 이어 중국과 일본, 한국의 사회사업
             발달에 대해 검토했다.
               1927년 5월에는 『불교』 35호에 「임진병란과 조선승병의 활약」이라는 민

             족주의적 입장의 글을 투고했다가 당국에 의해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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