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고경 - 2022년 2월호 Vol.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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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해 감옥에 갇힌 3년 동안 오직 미륵과 세친의 저술만 공부하
였다. 학문의 방식이 내가 평생 공부한 고증학과 유사하여 쉽게 받
아들일 수 있었다. 이를 알고 대승불교의 심오한 경지를 깨달았다.”
그는 미륵, 세친의 유식불교를 접하고서 이전에 『열반경』, 『유마경』 등을
읽었을 때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의 진리를 깨달았던 것 같다. 옥살이를 하
며 그는 『유가사지론』, 『섭대승론』 등 유식불교 서적들을 읽었고, 유식불교
의 그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특성에 감복하였던 것이다. 1906년 장태염은
만기 출옥하였고, 일본 도쿄를 방문하였으며 당시 수천명의 유학생들에게
도 민족주의의 큰 영향을 끼쳤다.
『제물론석齊物論釋』, 장자와 유식불교의 만남
장태염은 중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불교에 의거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는 “중국은
본래 불교의 나라이다. 불교만이 도덕을 증진시
킬 수 있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현실을 극복하
는 힘은 불교에서만 나올 수 있다고 보았고, 그가
불교를 통해서 가장 강조한 것은 “자기 자신을 의
지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는 자립정신이었
다. 그는 불교를 통해 사회 변혁, 혁명을 이루고자
하였고, 그에게 불교는 혁명종교이자 혁명도덕
사진 3. 장태염이 공부했던 이었다.
고경정사를 설립한
완원阮元. 1908년 동맹회 기관지 『민보』에 ‘네 가지 미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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