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고경 - 2022년 2월호 Vol.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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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너는 다만 언어와 문자만 따라가고 남의 말만 따라갔지만, 나는 늘
선정만 닦았다.”
선정을 닦는 것은 밥 먹는 것이고, 문자만 기억하는 것은 밥 얘기만 하
고 요리법만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밥 먹는 사람은 완전한 사
람이 되지만, 언어와 문자만 따라간 사람은 배가 부를 수 없습니다. 언어
2)
와 문자를 부처님이나 옛 조사스님들은 약방문藥方文 에 비유했습니다. 약
방문에 의지해서 약을 지어 먹어야 병이 낫지, 약방문만 외어 봤자 병이 낫
지 않습니다. 이처럼 실제 약을 먹는 것이 바로 선정을 닦는 것입니다. 그
러면 중생이 병이 나아서 부처가 됩니다. 부처님도 아난존자에게 말씀하
셨습니다.
“너는 약방문만 가지고 늘 기억만 했기 때문에 병이 낫지 않아 중생
그대로이고, 나는 약방문에 의지해서 약을 먹었기 때문에 완전히 성불
하였다.”
그렇게 기억만 하지 말고 선정을 닦으라고 해도 아난이 마음을 돌리지
않고 기억하는 길로만 가니, 부처님께서 “네가 금생今生뿐 아니라 억천만
겁토록 부처님 법문을 다 외웠다 하더라도 하룻밤 잠깐 동안 무루업無漏業,
즉 선정禪定을 닦는 것만 못하다.”는 말씀으로 늘 꾸짖었습니다. 그렇지만
총명이라는 이 병은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또 아난존자는 ‘부처님이 계시니까 언제든지 내가 못 깨치겠는가? 내 힘
으로 못 깨달으면 부처님 힘을 의지해서 깨치겠지.’라는 생각으로 게으름
을 피워 결국은 부처님 생전에는 깨치지 못했습니다.
2) 약藥을 짓기 위하여 약 이름과 분량에 대해 기록해 놓은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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