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고경 - 2022년 2월호 Vol.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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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하다 보니 어느 날 저녁, 몹시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다’ 생각하고 자
          리에 누우려고 목침을 베는 순간 확철대오했습니다. 그 길로 가섭존자를
          찾아가니, 가섭존자는 아난존자가 깨친 줄 알아보고 몇 가지 물어보고는

          인가印可를 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결집하는 회상에 아난존자를 참여시

          켜서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로 시작되는 경전들이
          편찬되게 된 것입니다. 불교사적으로 보면 후대에 성립된 경전도 많이 있
          지만 팔만대장경의 모든 법문은 대개 아난존자가 구술하여 이루어진 것이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난존자만큼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는 사람은 천추만고千秋萬古에 없
          지만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가섭존자에게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누이 말하지만 불교의 근본 생명은 깨치

          는 데 있는 것이지 언어와 문자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역

          사적 사건입니다. ‘정각正覺’의 ‘각’이란 것도 깨침을 말한 것이지 문자를
          안다거나 말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난존자는 팔만대장
          경을 뱃속에 간직하고 있었지만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가섭존자한테 쫓겨

          난 것입니다.

           불교 공부를 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근본 생명선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
          니다. 생명 없는 사람은 죽은 송장입니다. 그러므로 송장 불교가 아닌 살
          아 있는 불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에서 부처님 진리를 깨쳐야 합

          니다.
                                  『백일법문』(2014) 상권, 제1장 ‘불교의 본질’ 중에서 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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