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2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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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 붓다가 아이를 낳지 말라고 했나, 세속에 끌려다니며 욕망의 늪[淫]
에서 헤매지 말라고 했을 뿐이다.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이런 일이 벌어졌고, 그 후 수많은 신라의 승려들
이 앞다투어 도당 유학의 길을 떠나 그 넓은 중국 땅을 다니며 불법을 공
부하고 일부는 목숨을 걸고 인도로 건너가고, 일부는 귀국하여 명산마다
절을 짓고 법을 펼쳐나간 때가 200여년 동안 이 땅에서 벌어진 일이다. 중
국에서는 역경에 근거한 교학敎學과 동시에 ‘선의 황금시대’를 맞이하여
방棒과 할喝이 창천蒼天에 울리고, 인간이 ‘무엇이 진리인가’ 하는 문제를
붙잡고 죽기 살기로 풀어보려고 한 때였다. 철학이 다시 만개하고, 분화구
로 분출된 인간 정신이 이후 지식과 종교로 나누어 장강長江을 이루게 되
는 지점이었다. 불교에서 철학과 지식의 부분과 종교의 부분이 있는 것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백운계곡으로 난 산길을 걸으며 이런 생각들을 하였다. 간화선의 방법
도 하나의 방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봉암사와 같이 문을 걸어 잠그고 납
자들이 수행에만 전념하는 도량이 전국에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한 사역을 걸어 나오다 고개를 돌려보니 눈부신 희양산 백악
아래 태고선원의 장엄한 모습이 눈에 가득 찼다. 【사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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