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1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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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를 말한다. 무학이란 모든 번뇌를 끊어 더 닦을 것이 없는 아라한, 또
             는 그 경지를 말한다.
               아라한은 더 이상 배움이 필요 없는 ‘무학’이지만, 나머지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남아 있다고 해서 ‘유학’이라고 한다. 『앙굿따라 니까야』(AN3:84)에

             따르면, “그러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보다 높은 계를 배워
             야 하고, 보다 높은 마음을 배워야 하고, 보다 높은 지혜를 배워야 한

             다.”(AN.Ⅰ.231, kiñ ca sikkhati? adhisīlam pi sikkhati adhicittam pi sikkhati
             adhipaññām pi sikkhatī ti)라고 했다. 한역에서는 “보다 높은 계를 배움[增上

             戒學], 보다 높은 뜻을 배움[增上意學], 보다 높은 지혜를 배움[增上慧學]”(T2,
             210a)을 삼학이라고 했다. 한역의 ‘증상의학增上意學’은 ‘증상심학增上心學
             (adhicittasikkhā)’과 같은 뜻이다. 하지만 계戒·정定·혜慧 삼학의 관계에서

             보면 이것은 ‘보다 높은 선정을 배움[增上定學]’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원래

             의 뜻에 더 가깝다.
               『잡아함경』 제29권 제817경에서는 삼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어
             떤 것이 보다 높은 계를 배움[增上戒學]인가? 만일 비구가 계戒인 바라제목

             차波羅提木叉의 율의律儀와 위의威儀를 갖추어 미세한 죄를 보더라도 곧 두

             려워하는 마음을 내고 계를 받아 지녀 배우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이 보
             다 높은 뜻[마음]을 배움[增上意學]인가? 만일 비구가 탐욕과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을 여의고, …(내지)… 네 번째 선정까지 완전히 갖추어 머무는 것

             을 말한다. 어떤 것이 보다 높은 지혜를 배움[增上慧學]인가? 만약 이 비구

             가 ‘이것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
             생[集], 괴로움의 소멸[滅],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라고 사실 그대로 알면, 이것을 보다 높은 지혜를 배움이라고 말

             한다.”(T1, 210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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