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22년 4월호 Vol.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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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저리 자꾸 따라갈 수도 없게 되는 거야.”

           또한 공안의 전후 맥락을 내던지고 오로지 ‘어째서’, ‘이 뭣고?’의 외마디

          질문만을 드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야 의심이 치열해져서 금방

          깊이 들어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요컨대 화두 참구는 외마디 질문을
          들고 의심해 들어가는 것이지 논리적으로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일이 아니
          다. 또 화두를 염불처럼 암송하거나 호흡에 맞추어 기계적으로 의심하는

          일이어서도 안 된다.

           당연히 화두를 대상화시켜 들여다보고 집중하는 방식도 안 된다. 요컨
          대 논리적 이해, 신통한 해석, 단전호흡의 겸행, 하나에 대한 집중 등과 같
          은 것들은 성성한 의심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점에서 성철스님은 제대로 된

          화두 참구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어떤 경우라 해도 알 수 없는 화두에 의

          한 성성한 의심이 없다면 바로 그 이유로 인해 바른 공부의 길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오직 중요한 것은 ‘어째서?’, ‘이 뭣고?’와 한 몸이 되어 의심을 밀고 나

          가는 일이다. 화두가 우리 몸의 360개 뼈마디에 맺히고, 8만4천 모공에

          남김없이 밴다고 느끼는 것도 힘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화두가 사무
          친 의심이 되고, 그것이 눈덩이처럼 커가다가 마침내 우주 법계 전체를
          한 덩어리로 꽉 채우게 된다. 나와 대상이 한 덩어리 화두 속에 녹아드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화두 참구다. 지금 당장 남김

          없이 알지 못하고서는 그만둘 수 없다는 마음으로 화두 의심을 밀고 나
          가는 것이다.
           화두에 대한 묘사가 너무 엄숙한가? 그렇게 볼 일이 아니다. 화두 참구

          는 지금 당장 무심을 실천하여 궁극의 무심에 이르는 길이다. 그리하여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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