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고경 - 2022년 4월호 Vol. 108
P. 34
을 풀어낸 경우와 자습서를 보고 암기한 경우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가 존
재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자습서에 의한 공부는 진짜 실력이 되지 못한
다. 잠깐 참고하는 것은 무방하겠지만 그것을 공부의 핵심으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참선이 그렇다. 자신의 생과 사를 대적하는 일이므로 스스로 풀
어낸 답이라야 하는 것이다. 남의 답을 가지고 나의 생사를 대적할 수 없
다는 것은 자명하다.
성철스님이 제시한 또 하나의 요구는 모든 경계를 내려놓는 자세이다.
아무리 뛰어난 경계라 해도 그것에 머무는 일 없이 화두를 밀어붙여 나아
가라는 것이다. 설사 숙면일여의 뛰어난 경계라 해도 아낌없이 내려놓고
나아가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가르침이다.
“숙면일여란 꿈 없는 깊은 잠에 들어서도 일여한 경계이다. 숙면일
여의 경계가 나타나면 8지 이상의 자재보살인데, 이것조차도 제불
조사들께선 제8마계라 하여 머물고 집착하는 것을 극력 배척하셨다.
그러니 동정일여·몽중일여도 안 된 것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졸음과 잡념은 초심 단계에서 체험하는 역경계다. 숙면일여는 오랜 수
행 끝에 찾아오는 어마어마한 순경계다. 역경계는 막고 순경계는 유혹한
다. 이 모든 역·순경계를 뚫고 나아가는 것이 화두 참구다. 이때 우리의
손에 쥐어진 유일한 무기가 화두이다. 그것이 전체 여정을 뚫고 나가는 여
의봉임을 믿고 하루 24시간 화두를 따라 앉고 화두를 따라 눕는 것이다.
망념 중에도 화두, 선정 중에도 화두로 나아가는 것이다. 살아도 화두와 같
이 살고, 죽어도 화두와 같이 죽는다는 것이 수행자의 마음가짐이다.
이렇게 최고의 간절함을 담아 은산철벽을 파고드는 기세로 화두를 의심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