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고경 - 2022년 5월호 Vol.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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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하다. 그것이 수행 당사자가 채워야 할 빈칸을 남겨 놓은 과제물이기 때
          문이다. 나를 인정해 달라는 칭얼댐이 아니라 스승의 옆구리를 쥐어박는 기
          특한 대답들이 그 빈칸을 채울 때 『선문정로』는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철스님이 제시한 길은 너무 높고 멀다.”는 말은 일단 접어

          둘 필요가 있다. 그보다 먼저 자기 몫으로 만난 화두에 대한 진지한 천착
          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두 공부는 역동적 현실과의 역동적 만남을 내
          용으로 한다. 그래서 화두 참구는 부처의 마음과 가장 활발하고 긴밀하게

          만나는 현장의 제1선이 된다. 화두 참구 자체가 깨달음에 가장 가까이 근접

          한 활동이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참선에 뜻을 둔 입장이라면 그 차원과 단
          계의 고하에 상관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화두 참구에 전념하는 일만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깨달았다는 착각이나 고요한 선정의 탐닉,

          그리고 몸의 수련에 몰두하는 등의 곁길로 빠지는 일은 철저한 경계의 대상

          이 된다. 그것이 바른 수행과 깨달음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수행의 곁길과 그 위험성




           무엇보다도 깨달았다는 착각에 빠지거나 자신의 체험에 대해 분에 넘치
          는 의미를 부여한다면 필연적으로 수행의 정체와 퇴보가 일어난다. 원래
          이 공부는 어미 닭이 알을 품는 일과 같다. 알 품기를 멈추면 부화도 멈추

          는 것이다. 멈추기만 한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깨달았다는 착각이 일어나

          는 순간 퇴보가 일어난다. 화두 공부의 압력이 빠지면서 그에 눌려 있던 자
          아가 활동을 재개하기 때문이다. 몽산 덕이스님의 경우가 그랬다. 스님은
          몸을 눕히지 않는 용맹정진 끝에 홀연 ‘눈앞의 검은 구름이 걷힌 듯, 새로

          목욕을 하고 나온 듯, 심신이 맑아지고 상쾌해지는’ 경계를 체험한다.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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