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고경 - 2022년 5월호 Vol.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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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검을 받고 나서 그 처사는 설암스님의 경우처럼 새롭게 화두
를 배워 진실한 공부에 들어갔다고 한다. 해피엔딩을 향한 방향 전환이다.
물론 대부분의 착각은 이보다 더 하열한 자리에서 일어난다. 참선 중에 빛
이라도 보일라치면 그것을 무량광無量光이라 하고,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그것을 불보살의 음성이라 하면서 그 특별한 사건의 재현을 위해 자리에
앉는다. 그것을 깨달음의 경계로 자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신체 수련을 참선 수행과 동일시함으로써 일어나는 장애 역시 만만치 않
다. 이와 관련하여 성철스님은 특히 단전호흡의 장애를 지적한다. 호흡에
신경 쓰고 단전에 집중하느라 제대로 된 화두 참구를 놓친다는 이유에서였
다. 단전호흡은 틀림없이 좋은 방편이다. 그러나 단전호흡으로 화두 참구
를 대신한다면 그것은 장애 정도가 아니라 길을 잃는 일에 속한다. 나아가
그것으로 얻어진 능력을 과시하는 입장이 되면 그것은 외도가 될 수밖에 없
다. 왜 그런가? 불교 공부의 시작과 끝은 자아와 대상의 비실체성에 눈뜨는
일에 있다. 그래서 수행자는 자신의 ‘못남’을 확인하는 길을 걷는다. 만약 자
신의 특별한 능력을 자랑한다면 그것은 자아를 살찌우는 일이 된다.
이처럼 깨달았다는 착각, 삼매의 탐닉, 심신 수련에 의한 특별한 능력의
추구 등은 모두 자아를 재건하는 일에 속한다. 수행자의 비상짐독砒霜鴆
毒으로 지목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밥은 먹어야 하는 것이지 그것에 먹
혀서는 안 된다. 밥에 먹히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맛있는 것에 대한 관
심을 내려놓는 일이다. 경계는 통과하는 것이지 머물러서는 안 된다. 경계
에 머물면 필연적으로 경계에 먹힌다. 경계에 먹히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
은 그것을 대접하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거듭 강조한다. “견성즉불의 직행노선[直路]에 휴게
소를 세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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