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고경 - 2022년 5월호 Vol.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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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님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마음속의 의심덩이가 더욱 강해져서 힘을 쓸 필요도 없이 끊어지

                  는 일 없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모든 소리와 모양과 온갖 욕구와

                  일체의 바깥 경계가 전혀 들어오지 못하여, 청정하기가 은쟁반에
                  눈을 담은 것과 같고 가을날 맑은 기운과 같았습니다.”



               스님은 이 체험을 깨달음으로 착각하고 그것을 확인받기 위해 선지식을

             찾아간다. 그런데 도중에 심한 고생을 겪으면서 공부에 퇴보가 일어나게
             된다. 이후 장좌불와를 하면서 다시 공부에 매진했어도 그것을 복구하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당시 덕이스님은 참선에 들어가

             면 맑은 무심이 되었다가 선방을 나오면 그것이 사라지는 상황에 있었다.

             성철스님이 제시한 제1관문인 동정일여에 걸린 상태였던 것이다. 덕이스
             님의 깨달음에 대한 발원이 절실했기 망정이지 이 한 번의 착각으로 선종
             사의 빛나는 한 페이지가 사라질 뻔한 것이다.

               어쩌면 덕이스님은 특별한 경우에 속할 것이다. 깨달았다는 착각으로

             인해 공부를 잃고 중생 살림으로 돌아간 경우가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는 말이다. 한국의 선문을 강타했던 히피적 막행막식의 풍조를 기억해 보
             라. 그것이 남다른 안목의 열림과 해방감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일

             것이다. 또 그 자유의 퍼포먼스는 심지어 멋있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그것

             이 진정한 해탈에서 일어난 것이 아닌 한 수행의 생명을 끊는 독약이 된다
             는 것은 분명하다.
               한편 성철스님은 선정에 빠지는 일을 경계했다. 선정의 즐거움으로 인

             해 또렷한 화두 공부가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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