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고경 - 2022년 5월호 Vol.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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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날리다가 경문왕 9년에 입적하였다. 왕은 그에게 원감圓鑑이라는 시
호를 내렸다. 그의 법을 이은 전법제자인 진경대사眞鏡大師 심희審希
(855~923) 화상이 창원에 봉림사鳳林寺를 세우고 선풍을 드높이니 바로 봉
림산문이다(사진 3). 그리하여 원감대사는 봉림산문의 개산조가 되고 심희
화상과 그 제자들이 펼친 종풍을 봉림산파鳳林山派라고 한다. 아마도 고달
사 현욱화상 밑에서 홍각선사와 심희화상이 모두 공부하였지만 55세인 홍
각선사보다는 15세인 심희화상에게로 법을 전하여 그 맥을 있게 한 것으
로 보인다.
홍각선사는 이러한 시기에
활동을 하다가 873년(경문왕 13)
에 다시 억성사로 와 법당과 당
우들을 건립하고 불법을 전파
하였다. 873년은 9층의 황룡사
탑이 완공된 해이기도 하다. 그
가 억성사로 돌아오자 많은 사
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어 그
명성이 높았다. 그리하여 왕도
그의 높은 덕을 경모하여 왕경
으로 초빙하였고, 선사는 궁궐
로 가 열흘 동안 임금을 상대로
설법도 하고 마음도 나누었다.
왕의 귀한 전송을 받으며 절로
돌아왔다. 7년간 억성사에 주석
사진 7. 저수량 「안탑성교서」. 하다가 880년(헌강왕 6)에 법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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