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5 - 고경 - 2022년 5월호 Vol.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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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로 입적하였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억성사의 전성기는 홍각선사가
주석하던 시기라고 생각된다.
현재 서 있는 홍각선사탑비는 비신을 새로 만들어 복원된 것인데, 정강
왕 원년인 886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의 비신은 조선시대 때 파
손되어 파편만 남아 있어 현재 국립춘천박물관과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흩
어져 있다. 귀부는 거북머리가 아니고 용의 머리로 되어 있고 이수에는 구
름과 용이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이 탑비는 귀부의 조각이 손상
됨이 없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그 조각의 섬세함은 실로 감탄을 금치 못
하게 한다. 비문은 보림사寶林寺
보조선사창성탑비普照禪師彰聖
塔碑를 쓴 수병부낭중守兵部郞中
김원金薳이 지었다. 두전頭篆에
는 ‘홍각선사비명’이라고 새겨
져 있고(사진 4), 비문은 운철雲徹
화상이 왕희지王羲之(307~365)
의 글씨를 집자集子하고 보덕
사報德寺 혜강慧江 화상이 새겼
다(사진 5, 6).
신라시대에는 왕희지의 글씨
를 모아 비문의 글에 맞게 배치
하여 새긴 것이 적지 않다. 사
실 서성書聖이라고 부르는 왕희
지이지만 그의 진적眞蹟은 하나
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오늘 사진 8. 왕희지 「집자성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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