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1 - 고경 - 2022년 5월호 Vol.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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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의 은혜를 헛되이 받게 하지 말고, 자리가 적임자에게 돌아가
                  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동방을 살피시는 황상의 걱정을 나누어 지
                  는 직을 이미 등졌기에 서쪽 중국으로 돌아가는 시를 속절없이 읊

                  을 뿐입니다. 삼가 본국의 하정사賀正使 모관某官이 입조하는 편에

                  양위하는 표를 함께 보내 아뢰는 바입니다[臣每思量力而行. 輒遂奉身而
                  退. 自開自落。竊媿狂花. 匪劉匪雕. 聊全朽木. 所顗恩無虛受. 位得實歸. 旣睽分東
                  顧之憂. 空切咏西歸之什. 謹因當國賀正使某官入朝. 附表陳讓以聞.].”




               젊어 타국 땅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며 공부하고 모국 신라로 돌아와 나
             라에 헌신하고자 한 것이 결국 망국의 황혼에 서서 이런 양위표를 짓는 것
             으로 끝난다는 말인가! 정녕 하늘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산 속 깊은

             곳일지도 모르고 망망대해茫茫大海가 펼쳐진 바닷가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가 홀로 마지막 걸음을 옮기며 이렇게 되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참으로
             ‘죽음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일 뿐[死也一片浮雲滅]’이라는 말이 맞
             는 것 같다. 우리 역사에서 ‘외로운 구름孤雲’이 흩어지던 장면일지도…

               898년 효공왕이 된 헌강왕의 서자인 김요金嶢는 궁예가 나라를 세우고

             힘이 날로 강해 가는 와중에 비천한 첩 은영殷影에게 빠져 헤매다가 아들
             없이 4년 만에 죽었다. 이어 망해 가는 신라 정치권의 실세인 예겸乂兼(銳

             謙)의 의붓아들이자 옛날 박씨 왕의 마지막 왕인 아달라왕阿達羅王(재위
             154~184)의 후손이라고 하는 박경휘朴景暉가 신덕왕神德王(재위 912~917)이

             되었다. 박씨가 다시 왕권을 차지했다. 예겸은 이미 딸을 효공왕의 왕비
             로 들여보냈다.
               궁예弓裔(869?~918)와 견훤甄萱(867~936)이 세력 싸움을 하는 와중에 신

             라는 왕경 주변 지역을 유지하기에도 힘들었는데, 그도 5년 만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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