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고경 - 2022년 5월호 Vol.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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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우리가 접하는 왕희지의 글
씨는 그의 글씨를 보고 명필들
이 다시 베껴 쓴 것이거나 아니
면 왕희지의 글씨를 새긴 비를
탁본한 것이다.
‘천하제일행서天下第一行書’
라고 하는 왕희지의 「난정서蘭
亭序」도 왕희지의 글씨를 제일
좋아하여 모았다는 당 태종太
宗(재위 626~649)이 죽으면서
무덤에 같이 묻었다는 설화가
있을 뿐이고, 지금 전하는 것
은 우세남虞世南(558~638), 저
수량, 풍승소馮承素, 조맹부趙
孟頫(1254~1322) 등 명필들이
사진 9. 김생 글씨를 집자한 낭공대사비.
베껴 쓴 모본摹本이나 임본臨
本이다. 왕희지 행서의 표준으로 삼는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는
왕희지 글씨를 집자하여 새긴 것이다. 이는 현장玄奘(602?~664) 법사가 인
도에서 불경을 가져와 이를 번역하여 태종에게 바치자 왕이 이를 치하하
여 지은 ‘성교서聖敎序’라는 글인데, 처음에는 저수량楮遂良(596~658)이 해
서楷書로 이를 써 「안탑성교서雁塔聖敎序」라고 하였다(사진 7).
그 다음에 당 고종高宗(재위 649~683) 때에 장안의 홍복사弘福寺 승려인 회
인懷仁이 왕희지의 글씨를 모아 비로 만들어 홍복사 경내에 세웠는데, 이
를 「집자성교서集字聖敎序」라고 부른다(사진 8). 이 비는 현재 서안비림西安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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