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22년 5월호 Vol. 109
P. 97
林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명필 김생金生(711~?)의 글씨를 집자하여 비문
으로 새긴 경우가 있다. 최치원 선생의 사촌 동생인 최인연崔仁渷(崔彦撝=崔
愼之, 868~944) 선생이 지은 태자사太子寺의 「낭공대사백월서운지탑비명郞
空大師白月栖雲之塔碑銘」을 단목端目 화상이 김생의 글씨를 집자하여 세운 낭
공대사비가 그 한 예이다(사진 9).
홍각선사의 제자로는 범룡梵龍 화상과 사의使義 화상 등이 있었다. 시호
는 홍각이고 탑호는 선감지탑禪鑒之塔이다. 도의대사가 선법을 펼칠 때 중
앙에서 워낙 반발이 심하여 설악산에서 조용히 제자들에게 전하였다고 되
어 있으나 염거대사가 억성사에 머물 때 많은 수행자들이 그를 찾아왔고,
홍각선사와 체징선사와 같은 고승들이 그 문하에서 활동한 것과 홍각선사
가 주석할 때 왕의 초청을 받은 일까지 고려해 보면 어쩌면 그 시절 억성
사가 선법을 펼치는 중심지로 활발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골짜기까지 찾아오면서 글로 남기는 것은 어느 시대나 ‘인간의 문
제’를 풀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 모습을 보고 싶
어서다. 인간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자재自由自在하고 행복하게 살
아 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골짜기 바람이 실로 소쇄瀟灑하여 시
원하다.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