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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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불성론은 성불에 대한 낙관과 확신의 근거가 된다. 『선문정로』에
서 이것을 그 첫 번째 법문인 견성즉불론의 바로 뒤에 배치한 이유이기도
하다. 성철스님은 첫 번째 견성즉불의 법문에서 어떠한 경계 체험이라 해
도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지나치게 엄
숙한 감이 없지 않다. 자칫하면 이로 인해 수행에 대한 용기가 꺾일 수도
있다. 이에 강력한 부정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바로 잡아야 할 필
요가 있다. 그래서 그 뒤를 이은 중생불성론의 설법에서는 모든 중생이 불
성을 갖추고 있으며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불성을
“바로 믿고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능성으로서의 부처와 결과로서의 부처
다만 우리는 성철스님이 불성을 강조하면서도 ‘열심히’라는 말을 삽입했
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방임으로 빠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다. 성철스님의 법문에서는 이미 부처이므로 그것에 맡겨두고 자유롭게
살아가면 된다는 식의 주장은 일절 배제된다. 바른 믿음은 오직 ‘열심히’
하는 노력이 있어야만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된다. 그런 점에서 성철선에
있어서 불성에 대한 믿음은 ‘열심히’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성철스님이 불성을 설하면서도 가능성으로서의 부처보다는 결과로서의
부처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씨앗이 심겨 있음을 아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그 씨앗이 잘 성숙하도록 열심히 잡초를 매고 물을 주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종국에 결실을 거두게 된
다. ‘열심히’ 하는 수행이 있어야 실질적 깨달음이 있게 된다는 실참실오의
주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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