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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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설법을 한다. 그 때 설법을 듣고 있던 돌들이 “일천제도 똑같이 불성을
             갖추었다.”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지금도 소주蘇州 호구虎
             丘의 백련지白蓮池에는 도생의 설법에 고개를 끄덕인 돌이 남아 있다.




                믿음은 불성을 발현하는 힘


               이러한 극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불성론은 이후 선종에 적극 수용

             되어 가장 중요한 축을 형성하게 된다. 당장 선종의 표어인 견성見性이라

             는 말 자체가 불성[性]을 본다[見]는 뜻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선종은 불성
             을 천착하는 교파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내 안의 불성을 바로 볼 수 있는
             가? 좌선을 하면 되는가? 면벽을 하면 되는가? 좌선에도 여러 길이 있다.

             만약 고요히 앉기만을 능사로 삼는다면 그것은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

             고자 하는 일과 같다. 벽돌은 아무리 갈아도 거울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참
             선을 한다고 해도 바른 출발과 바른 노정이 중요하다. 성철스님은 그것이
             불성에 대한 바른 믿음과 바른 실천에 있다고 보았다.




                  “중생이 곧 부처라는 것을 바로 믿고 바로 보고 철저하게 깨달으면
                  그가 곧 부처님이다.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결코 어려
                  운 일이라 할 수 없다. 바로 믿고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다.”



               성철스님이 설한 바와 같이 견성은 자신이 곧 부처라는 것을 바로 믿는
             것에서 출발한다. 바로 믿는다는 것은 바르게[正] 믿는다는 뜻인 동시에 그

             즉시[卽]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그대가 바로 부처’라는 말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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