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5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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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한 후 마지막으로 남은 동쪽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고조선을 공격한
             것이었다.
               행적화상은 이렇게 중국 주나라 강씨의 후손으로 신라에서 최씨로 살아

             온 집단의 후손이었다. 이러한 신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대사는 어릴 때

             부터 영민하여 모든 것에 의문을 두고 탐구하다가 출가를 결심하고 여러
             산문의 고승 대덕을 찾아 배움을 구하고, 가야산 해인사에서 『화엄경』 등
             불경을 공부한 다음, 855년 문성왕文聖王(839~857) 17년에 복천사福泉寺에

             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오늘날 강릉인 명주溟州에 있는 굴산사崛山寺의

             통효대사通曉大師 범일梵日(810~889, 도당 유학: 831~847) 화상을 찾아가 그
             문하에서 수년 동안 수행하고, 운수행각을 나서 진리 탐구에 진력을 하다
             가 드디어 870년 경문왕景文王(861~875) 10년에 조공사朝貢使로 당나라로

             들어가는 김긴영金緊榮의 허락을 얻어 그를 따라 당나라로 건너갔다.



                청원행사의 법을 신라에 처음 가져와



               그는 당나라 서쪽 해안에 도착하여 장안長安으로 갔다. 그곳에서 황제의

             허락을 얻어 보당사寶堂寺 공작왕원孔雀王院에 머물렀다. 얼마 뒤 당나라 의
             종毅宗(833~873)의 생일에 칙명을 받고 입궐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황제가 “멀리에서 바다를 건너온 것은 필시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있

             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받고 “대국을 두루 다니며 사람 사는 것

             을 보고 불도를 널리 공부한 후 신라로 가서 불법을 세우려고 합니다.”라
             고 답을 하였다.
               이를 계기로 황제는 행적화상을 좋게 보고 두터운 신임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 뒤 오대산五臺山 화엄사華嚴寺로 가서 문수보살에게 감응을 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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